2018. 5. 7. 23:35ㆍ문화생활/책
독서모임때문에 읽기 시작한
불멸 - 밀란쿤데라
민음사의 책들은 두꺼울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거부반응부터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500페이지가 넘었다.
작가 밀란 쿤데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이렇게 작가설명이 끝이라서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90세에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작가시다. (죄송합니다.)
두꺼운 책 만큼이나
7개의 목차를 가지고 있는데
솔직히 나는 처음보는 소설의 구성이었다.
무라카미하루키처럼
밀란쿤데라식의 소설이라는데
이 사실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시대적인 배경부터 작가에 대해 조금만 알고 읽었다면
이 두꺼운 책을 완독하기 비교적 쉬웠을 수 있을 것 같다.
*
불멸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지 않다.
작은 불멸, 말하자면 생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어떤 인물에 대한 추억과
큰 불멸, 즉 생전에 몰랐던 이들의 머릿속에도 남는 어떤 인물에 대한 추억은 구분되어야 한다.
*
그녀의 자아라는 온갖 괴로움과 더러움을 씻어 준다고 느끼며
거기에 그렇게 누워 있었다. 기이하고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망각했고, 자아를 잃어버렸으며,자아로부터 해방되었다.
바로 거기에 행복이 있었다.
인생에서 견딜 수 없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로 존재하는 것이다.
*
산다는 것, 거기에는 어떤 행복도 없다.
산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자아를 나르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존재,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이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샘으로
온 우주가 따뜻한 비처럼 내려와 들어가는 돌 수반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
우리는 우리 이미지 뒤에 숨을 수 있고, 우리 이미지 뒤로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수 있으며
우리 이미지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도 있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의 이미지가 아닌 것이다.
밀란쿤데라의 소설은 기존에 소설처럼 생각하고 읽으면
읽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해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다.
1992년도에 나온 불멸은 독자와 소통을 하면서 이야기하듯 작가가 소설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에
뭔말인지 몰라서 한참을 다시 읽고 다시 읽고를 반복했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절대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수 없게 복잡스럽게 만들어놓았고
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 책을 다시 읽어야한다는..
(아마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어볼 것 같다. 제대로 안 읽은 기분이 자꾸들어서)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나 줄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밀란쿤데라가 던지는 메세지가 중요한 것인데
나는 심도있게 이 책의 줄거리가 궁금했던 것 같다.
소설 중반에는 괴테가 등장하는데
괴테와 베티나도 실존인물이기때문에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인지
허구인 것인지는 아직도 헷갈린다. 그럴수도 있다는 것인지 아니라는것인지 모르겠다.
예순두 살의 괴테는 지적이며 야심찬 스물여섯 살의 베티나를 만난다.
베티나는 괴테에게 사랑을 표현하며 편지를 보내지만
괴테를 사랑한게 아니라 이렇게 유명한 사람과 편지를 주고 받고
유명한 괴테와 이런 관계였다는 것을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싶었던게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남들이 보는 나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또 내가 남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보여지기 위해서 내가 아닌 모습으로 SNS에
내가 만드는 이미지들은 자신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미지속에 숨은 게 아닐까?
어쩌면 그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 나이기 때문에
내 이미지가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과 의문들을 들게 만들었던 책
소름끼치게도 예전에 쓴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밀란쿤데라의 불멸
너무 앞서나갔던 책이 아닐까 싶다.
최신작인 2014년에 나온 무의미의 축제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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